얼마 전 고향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같은 동네에 살았고 같은 중학교를 다닌 친구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서울로 갔고 필자는 익산으로 진학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기억하는 모습은 어릴 때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기억하거니, 그가 대학생이 되어 고향집을 방문했을 때, 마침 서울에서 내려온 필자와 동선이 겹쳐 잠깐 얼굴을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 명절쯤 전후로 각각 아이들의 부모가 된 채로 스친 적이 있었다. 깊은 안부를 묻거나 사는 형편을 묻기엔 우리 사이는 그만큼 먼 사이였다. 그런 관계의 친구가 문득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50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지만 아직도 뇌리 속엔 그는 예전의 그 소년 그대로다. 그는 같은 동네에서 자란 낯익은 이름들을 거론하며 2년 전쯤 모인 적이 있다고 했다.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같은 동네에서 같은 중학교를 나온 동창과 후배들의 모임을 주선하고 싶다고도 했다. 필자는 좋다거나 싫다거나 표현하지 않았다. 그 또한 꼭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아닌 것 같아서 침묵하기 좋았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불가근 불가원’의 거리를 선호한다. 굳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도 도울 수 있으면 혼신을 다해 돕고, 도울 수 없으면 도울 수 없는 그것으로 족하면 그것이다. 미련이나 아쉬움은 집착을 낳는다. 집착처럼 추한 것이 또 있으랴. 그러기에 그 서늘한 거리를 즐기는 편이다.
친구에게 줄 것이라곤 필자의 시집이 전부였다. 시집을 보내주겠노라고 주소를 부탁했다.
다음날 우체국을 가야 하는데 집 근처 N우체국은 현재 공사중이어서 7월 17일까지 문을 닫은 상태다. 이 무더운 날에 N2동 우체국까지 가려면 족히 15분 정도는 걸릴 텐데 난감했다. 그래도 친구와의 약속은 지켜야 해서 11시 20분에 집을 나섰다. 도착해보니 우체국 문은 닫혀 있었고 대신 출입문에 큰 프랑카드가 걸려 있었다. 점심시간은 11시30분부터 12시30분이고 군산 우체국은 점심시간이 없다는 안내였다.
굳게 닫힌 우체국 앞에는 큰 가방을 여러 개 놓고 대기하고 있는 어르신이 계셨고, 한쪽 나무 그늘에는 더 나이 드신 분이 짜증스런 얼굴로 손부채질을 하며 서 계셨다. 집으로 돌아가기엔 날씨가 너무 더워 필자는 화단가에 걸터앉아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공무원들은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국민을 이리 불편하게 하면 되나’. 물론 공무원도 사람이니 식사는 제때 해야 맞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점심시간이라면 보통은 12시나 12시30부터 아닌가. 그렇다. 너그럽게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다 치자.
직원들은 식사하되 문을 열어두고 가면, 고객은 우체국 내에서 직원들 식사 끝날 때까지 대기하게 하면 될 일 아닌가. 만약 물건을 잃어버릴 위험이 고민이라면 CCTV를 설치하면 될 일이다.
요즘 택배사들은 무인함에 넣기도 하지만 문앞에 두고 가도 분실 위험이 거의 없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의 도덕 의식 수준이 높음을 방증한다. 이런 국민 수준을 무시하고 분실 운운한다면 그야말로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공무원들의 고자세다. ‘우리는 이렿게 할 테니 너희는 우리에 맞춰 따르라’는 식의 권위적인 태도는 얼마나 구태의연한가. 공무원과 국민은 평등관계이다. 공무원이 국민에게 굽신거려도 보기 좋지 않다.
국민 또한 공무원에게 함부로 대하거나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것도 옳지 않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민주국가로 가는 길이 아니겠나.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렸다. 인턴사원 같은 어린 직원이 빠른 손놀림으로 일처리하는 걸 지켜보다가 높은 자리를 보니 비어 있었다. 해야 할 말을 전하지 못한 채 돌아오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 누군가는 필자가 침묵함으로써 또 다른 불편을 겪을지도 모른다. 때로 어떤 침묵은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싸구려 귀걸이 같다,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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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