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등산과 여행에 취해 겁도 없이 산과 들을 넘나들었다. 겨울철 산등성이는 늘어선 나목들의 풍경은 일급 연출가의 작품이었다. 그 당시 동해안 가는 길은 구불구불 기어오르다 내려다보면 방금 지나온 길이 아슬아슬하기에 더 짜릿한 쾌감이 흘러넘쳤던 일이 눈에 선하다.

  작금의 동해안 가는 길은 터널 세상이다. 터널이 많기도 하지만 한참을 달려야 하늘이 보일 정도의 긴 터널이 한둘 아니다. 이렇게 많은 터널이 언제 뚫렸는지 놀라울 뿐이다. 터널을 지나면 나타나는 긴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계곡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하다. “야, 우리나라 대단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빨라서 좋고 가까운 것 같아 더 좋다. 

  겨울 날씨치고 너무 맑고 하늘이 파랗다. 차창 밖으로 저 멀리 산등성이에 사과 그림이 그려진 커다란 간판이 언뜻언뜻 나타났다 사라진다. 아마 이 고장이 사과 생산지라는 곳을 선전하는 것이려니 생각하니 목마름 김에 사각거리는 사과 생각으로 침이 솟는다. 차는 간판을 향해 달리는 듯하고 간판은 차를 향해 마중 나오는 양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아주 빠르게 휙! 차 뒤로 지나는 간판이 순간 한눈에 들어왔다. 아주 맛있게 잘 그려진 커다란 사과 밑에 “졸음운전 했지요. 사과하세요.”라는 큰 글귀다.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리는데 방금 사라진 간판의 잔상이 떠오른다.

 ‘졸음운전 했으니 사과하라?’ 언뜻 생각해서 무슨 뜻인지 잠시 혼란스럽다가 이내 감이 잡혔다. ‘아하, 그렇구나!’ 이 고장의 특산물인 사과를 선전한다면 당연히 “졸음운전 했지요. 사과 많이 드세요.”라고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차원 더 나가 ‘사과’라는 말이 풍기는 색다르고 참신한 어감을 졸음운전 예방에 활용했다는 발상은 실로 놀라울 일이다. 더구나 알 듯 말 듯 어법에 어긋나는 다소 엉뚱한 것 같은 표현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다시 되씹어 볼수록 그 의미와 느낌이 매우 신선하다.

 짧은 순간에 일어나 혹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설령 잘못 보았더라도 졸음운전 예방에 적용한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어쩐지 정감 있고 강렬한 인상을 주어 몇 번을 곱씹어도 오래 기억에 남을 표현이다. 

  고속도로변에 자주 나타나는 졸음운전 예방 글귀가 자극적이고 원색적이다. “졸음운전! 도로 위의 시한폭탄.” “졸음운전! 목숨을 건 도박입니다.” “졸음운전! 도착지는 이 세상이 아닙니다.” 이는 졸음운전의 피해가 상상외로 크기 때문에 당연한 표현이라 여겨지지만 어쩐지 섬뜩하다. 그래서인지 아주 강렬하게 뇌리에 박혀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졸음운전이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라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해하나 한편으로는 모처럼 나서는 즐거운 여행이 졸음운전 글귀에 매몰되는 듯한 아쉬움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졸음운전 예방은 절대적이고 최선이다. 졸리면 쉬었다 가자. 가다가 쉬는 것도 즐거운 여행의 한 대목이다. 그동안 틀에 박힌 굳어진 삶의 한계를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시점에 창의적인 졸음운전 예방 홍보 글을 대하니 어려운 문제집을 이제야 다 푼 기분이다. 

  “졸음운전 했지요. 사과하세요.” 사과가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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