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수능이 끝났다. 해마다 수능일이 되면 한파가 몰아쳤다. 그래서 수험생이나 부모나 교사들은 그들의 인생이 달린 당일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딸의 수능일이었다. 그 무렵 폭설이 내렸고 기온도 급강하하여 길은 미끄럽기 그지없었다. 몹시 걱정되는 시험일이었다. 필자는 그날 새벽에 일어나 대형 보온병에 커피를 가득 담았다. 날씨가 추우므로 낯모르는 수험생들일지라도 쉬는 시간에 커피를 나눠 먹으라는 의미에서였다. 딸은 택시를 타고 시험 장소에 가야 해서 필자는 택시 타는 곳까지 보온병을 들고 따라나섰다. 도로는 맨몸 가누기조차 힘든 빙판길이었고 길가 눈은 양옆으로 수북이 쌓여 있었다. 가방이 무거웠는지 딸도 빙판길 위에서 비틀거렸다.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것은 결코 두려운 일이 아니었다. 택시가 잡히지 않아 시험시간에 늦을까 봐 노심초사하는 마음뿐이었다. 

 큰 도로에 이르렀을 때 택시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둠 속 먼 곳에서부터 쌍라이트를 켜고 길게 줄을 지어 서 있는 자동차들의 행렬과 운전자들! 하나같이 모두 밖에 나와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며 “수험생이냐?” 묻고 있었다. 수험생이라 답하면 히터를 켜 놓은 자신의 차량에 수험생을 타게 하고는 곧장 어둠 속을 빠져나갔다. 놀라웠다. 아름답고 따뜻한 사람들을 만난 생生의 첫 순간이었다. 가슴 깊이에서부터 울려오는 아! 라는 감탄사는 험한 세상을 뎁히고도 남을 온도였다. 더욱 감동적이었던 것은 차량의 종류였다. 소형차를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차량들, 특히 눈에 띈 것은 꽃집 배달용 트럭, 학원 소형 버스, 심지어 오토바이까지도 대기하고 있었던 모습이었다. ‘자신의 자녀도 혈연도 아닌데 이 추운 새벽에 나와 고생하시다니...’ 

 사념의 계절이 다시 왔다.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마음이 먼저일까 물질이 먼저일까를 생각한다. 누군가는 마음이 먼저랄 것이라 할 테고, 누군가는 물질이 먼저랄 것이며, 누군가는 마음과 물질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할 것이다. 물론 최상은 진정한 마음이 담기고 덧붙여 물질까지 오는 것이리라. 그러나 최상 중 최상이라 함은 그저 베풀고 그 무엇도 바라지 않음이다. 오래전 수능일의 그 분들처럼 말이다. 성자가 따로 있겠는가. 종교가 따로 있겠는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그 무엇이, 진정 대가를 바라지 않고 행하는 마음이라면, 어떤 이념도 사상도 종교도 궁극엔 하나일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 그날처럼 깊은 사념에 잠긴 12월의 하루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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