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모교는 익산이다. 필자는 동창 모임에 참석하지는 않으나 가끔씩 소식을 주고받는 여고 친구 몇이 있다. 이들 또한 익산에 거주하기 때문에 함께 부의를 전하러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익산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는 고인의 비보에 놀라 장례식장으로 가고 있다면서 오히려 필자가 동창 모임에도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비보를 알았는지 궁금해 했다. 상황 설명을 했다. 결국 조문은 생략하고 부의만 하겠노라 친구에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바로 메시지에 있던 고인의 딸 계좌를 찾아 부의금을 입금한 뒤 고인의 딸에게 위로전화를 했다. 급작스레 어머니의 죽음을 맞은 고인 딸의 목소리는 낮게 떨리고 있었다.

 늦은 저녁, 익산 친구와 다시 통화를 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다녀온 친구는, 자신이 아무래도 인생을 잘못 산 것 같다며 연거푸 한숨을 쉬었다. 자신은 그동안 지인들로부터 경조사가 있다는 알림이 오면 빠지지 않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하면서. 그래서 그 친구는 고인이 된 동창의 비보를 접하자마자 고인과 특별히 가깝게 지냈던 동창 몇에게 함께 장례식장에 가지 않겠느냐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안 간다, 못 간다고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느 동창은 이런 ‘공지’는 안 보냈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는데, 그때 망치로 머리를 두드려 맞는 느낌이 들어 자신이 죽은 후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헛살았나. 저들처럼 살아야 잘 사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 여전히 착잡하다고 했다. 

 사람 사는 세상, ‘십인십색’이다. 누가 누구를 탓할 것인가. 그렇다고 세상 사람들 모두를 이해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아니다. 굳이 남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 일이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충분히 사고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개입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언행으로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해를 끼치지 않는지는 살필 일이다.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닌, 함께 사는 세상인 까닭이다.

 유난히 길었던 그 밤, 사람이 산다는 건 무언가에 날인捺印하는 게 아닐까를 생각했다. 물질에, 명예에, 양심에, 자존심에, 체면에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바라지 않는 것, 행여 누군가에게 무엇을 줬다 해도 준 것조차 까마득히 잊어 버리는 날인이야말로 바람직한 날인이 아닐까. 그런데 그 바람직한 날인, 그 무한한 편안함을 누릴 수 있는 날인이 왜 이리 힘든가, 어려운가. 세상에 부는 바람 탓일까.

 날인하고 싶은 마음의 봄,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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