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용서’라는 주제로 송구영신 예배에서 목사님이 예화로 꺼낸 이야기다. 용서하지 않고 미워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나 자신이 힘들어진다는 게 주제였다. 몇 주전 후배가 책을 낸다고 먼저 원고 읽고 평 좀 해 달라고 했다. 지난해 마지막 날 저녁에 이 책을 읽었는데 이 글이 눈에 띄었다.

“감정에 빠져 저 사람은 그런 사람이라고 고착화하여 그 생각만 떠올려도 치가 떨리면 돌에 새기는 것과 같다. 명상이나 수련을 통해 감정의 느낌을 희미하게 하거나 없애는 방식은 물에 새기는 것과 같다. 감정과 함께 깨어있다는 것은 감정을 피하거나 없애지 않고 생생하게 느끼되 거기에 빠지지 않고 사용함으로써 즉각적으로 흔적이 남지 않도록 하므로 공기에 새기는 것과 같다.” 12월 31일 우연히 보게 되는 글이 지난해와 비슷해서 신기했다. 

한 해가 가는 마지막 날에 나는 종일 읽고 썼다. 늦은 오후 결제 올라 온 거 검토했고, 저녁 시간에 선생님들 몇 분께 피드백할 거 안내했고 집에 와서 후배 글 읽고 메모했다. 그리고 뜨문뜨문 새해 인사에 답장했다. 2023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 다른 여러 목적하는 일들이 많지만 그중 중요한 것 하나를 뽑아 보라고 한다면 ‘평화’다. 돌아보니 내게도 감자가 들어가 있는 자루가 있다. 모두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씩 무거워 짐을 느낀다. 이 자루를 완전히 태워버리려고 한다. 나 중심 사고를 없애야겠다. 극소수 정말 나쁜 놈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인간관계의 문제는 오해와 함께 상대를 헤아리지 못하는 마음에서 기인한다. 

감자 자루를 태운다는 것은 용서다. 그런데 내 가슴의 가장 밑바닥을 보다가 내가 과연 누군가를 용서해 줘야 할 사람인가라는 회의가 인다. 인간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죄짓는 일이라는 어떤 분의 말씀이 가슴 한쪽을 치고 올라왔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감자일 수도 있겠다. 그것도 아주 썩고 냄새나는 감자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삶이 너무 빠르게 간다. 좋은 사람들과 교재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나누어야 할 일도 제 명에 하려면 시간이 너무 없다.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낭비는 일은 접어야 옳다. 불안해하지 말고, 생각 좀 덜하고, 상처받지 말고, 투덜거리거나 불평 거릴 필요 없고, 휘청대지 말며 그냥 담대하게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행해야 할 활동과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쓸데없이 감자 자루 들고 다니며 냄새 풍길 시간이 없다. 그저 옳은 길이라고 믿는 곳으로 사랑하는 이들과 사랑하며 뚜벅뚜벅 갈 뿐이다. 

우리 모두가 지역사회라는 공동체에서 감자 자루 태워버리고(혹은 나 또한 썩은 감자라는 것을 자각하며) 사람답게 삶을 살아 낼 수 있도록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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