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렬 독립투사는 김해 김씨 송계(松溪) 병수(炳晬) 공의 장남으로 서수면 축동리 내무장 마을에서 1898년 11월 16일 태어났다. 당시 조선말의 정국은 매우 혼미하여 군산지역은 한일합방 이전에 이미 일본인들의 불법진출로 기름진 옥토가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간 상태였다.
선생의 부친은 한말의 어지러운 세상을 비관해 은거했던 학덕이 높은 선비로서 학동들을 가르치며 영농에 종사했다. 34세의 늦은 나이에 아들을 본 부친은 친히 아들에게 사서삼경을 가르쳤다. 선생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학업을 계속해 임피보통학교를 마쳤다.
자손이 귀한 관계로 부모의 간청에 따라 13세의 나이에 4살 위 17세의 고정열과 결혼했다. 선생은 동생 판실에게 부모를 봉양하도록 당부하고 부산으로 유학을 떠나 부두 노동을 병행하며 부산상업학교를 졸업했다. 수학 중에 뜻한 바가 있어 천도교에 입교해 신망받는 청년지도자로 성장했다. 혁명가적 기질을 타고난 선생은 약관 20세에 천도교 간부들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특히 의암 손병희 선생의 두터운 신임을 받게 되면서 전국적으로 순회하며 중앙의 뜻을 전달하는 착실하고 책임 있는 지도자가 되었다.
마침내 손병희 선생은 민족의 봉기인 3·1운동 거사를 앞두고 평안도에 배부해야 할 3천 매의 독립선언서 중앙 연락요원으로 약관 22세의 김홍렬을 임명했다.
선생은 1919년 2월 28일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이종일로부터 3천여 매의 독립선언서를 전해 받았다. 장사꾼으로 변장한 후 일본군 정예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평양과 평안도 일대에서 3월 1일 거사가 차질이 없도록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는 선봉장 역할을 완수했다.
김홍렬 선생의 활약은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 특별 형사부에서 판결한 3?1운동의 주동인물(손병희, 최린, 권동진 등)에 관한 판결문 속에도 잘 나타나 있다.
특히 동아일보(1920년 4월 10일자)는 ‘3·1운동 47인 예심결정서’를 인용해 ‘약 3천 매가 1919년 2월 28일 주소미상의 천도교도 김홍렬에게 교부되었고, 김홍렬은 평안도에 지참하여 각처에 배포하였다.’고 보도했다. 선생의 활약으로 평안도 만세운동은 경성과 함께 평양, 진남포, 안주에서 3월 1일 거사가 차질 없이 일어날 수 있었다. 이어 7일까지 계속 15개 부·군 모두 참여하는 시위로 확산됐고 이북 전역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다.
선생은 다시 경성으로 올라와 3월 5일 경성 만세운동에 앞장을 섰다. 특히 고종황제 국상 시 전국 각지에서 모인 지인들에게 독립선언문을 배포했다. 그 후 삼엄한 경계망을 무사히 빠져나와 고향 임피로 귀향했다.
고향에서 궐기의 기회를 보고 동지규합에 애쓰고 있을 때 3월 25일 경성에서 시위를 하고 내려온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인 후배 진장권의 연락을 받았다. 진장권은 1918년 2월 27일 ‘아(我) 일생(一生) 조선독립을 위하여 일하기로 결심함’이라는 혈서를 썼고 파고다 공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애국학생이었다.
선생은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휴대하고 돌아온 진장권과 동지로 결의한 김석종, 최한풍, 황봉규 등과 함께 사전 모의했다. 임피 장날인 3월 29일 정오를 기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쳐 군민을 선도하기로 결의했다. 3월 28일에 진장권의 집에서 태극기 200매를 만들어 만세시위운동의 거사준비를 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그들은 아침에 태극기와 선언문을 가지고 김석종 집에 집결했다.
그러나 일경에게 사전에 정보가 누설되어 3월 29일 행동개시 직전 모두 체포되고 말았다. 그들이 끌려가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시장 주변 사람들도 만세시위에 일제히 동참했다. 선생을 포함한 다섯 사람은 임피에서 군산경찰서로 이송되어 심한 고문 후 기소되었다. 평소에 요주의 인물로 지목된 선생에 대한 고문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였다. 경찰의 모진 고문을 받고 한 달 후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모두 항소해 동년 6월 20일 대구복심법원(고등법원)에서 진장권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선생을 포함 나머지 4명은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선생이 군산경찰서에 체포 시 심문 과정에서 선생의 ‘평안도 독립선언서 배포’와 ‘3월 5일 경성시위’의 전력이 탄로되었더라면 중형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선생은 ‘임피시장 만세시위’로 반신불수가 되다시피 상처를 입었지만 항일의식은 더욱 강렬해졌다.
출옥 후 여독으로 고생을 겪으면서도 1923년 1월부터 비밀결사대인 ‘삼성구락부’를 조직해 옥구, 대야, 회현, 성산 등 임피군 내의 동지를 규합하고 지하운동 조직을 강화하는 등 항일운동을 계속했다.
안타깝게도 선생은 1924년 11월 26일 오후 3시경에 대야 역전에서 군산경찰서 고등계 형사대에 체포되고 말았다. 오후 5시부터 시작해 새벽 2시까지 진행된 철야심문은 잔인무도했다. 끓인 기름에 손발을 담그고 구리쇠를 불에 달구어 배꼽을 지지는 등 처참하기가 말할 수 없었다. 선생은 끝까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럴수록 극심한 고문은 이어져 마침내 의식을 잃게 되었다. 당황한 경찰은 선생의 거주지 관할 임피주재소에 긴급 지시를 내렸다. 다음날 새벽 1시 30분경 대문을 요란하게 두드리는 소리에 놀란 동생 판실이 나가자 일인 형사 2명과 순사 1명이 무턱대고 군산경찰서로 동행할 것을 요청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따라 나선 동생은 새벽 5시에 군산경찰서에 도착하였다. 고등계 형사실에 도착했을 때 선생은 인사불성이 되어 있었다. 판실은 반미치광이가 되어 형을 업고 13km나 되는 길을 4시간에 걸쳐 서수 집에 도착했다. 피투성이가 된 선생을 보자마자 부인 고정열 여사는 즉시 도끼로 손가락 둘을 잘라 남편에게 피를 수혈했다. 선생은 10시간 정도를 버티다가 결국 11월 28일 오후 6시 27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했다.
당시 동아일보(1925년 1월 12일자)와 조선일보(1924년 12월 27일자)는 고부인(高夫人)의 위부단지(爲夫斷指)의 정렬(貞烈)을 일제히 보도하며 칭찬했다. 광복 후 1977년 3월 1일 성균관장은 고부인에게 열녀표창장을 수여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을 기리어 1980년 독립유공자로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8월 15일 훈격 내용의 변경에 따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해망로의 군산근대건축관을 가면 한쪽 벽면에 선생이 순절하기 직전에 하얀 광목 두루마기를 입고 좌정하고 찍은 사진을 관람할 수 있다. 100여 년 전 조국의 광복을 위해 두루마기가 피범벅이 되도록 고문을 당하고 순국한 지아비를 껴안고 통곡하는 고부인의 심정은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