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암 최익현 선생을 맹주로 하고 돈헌 임병찬 의병장을 총사령으로 하는 의병 부대는 1906년 병오년 4월 13일(음력) 태인 무성서원에서 병오창의의 깃발을 올렸다. 면암의 강회가 있은 후 태인, 순창, 곡성 등지를 공략하였다.
그러나 일 주일만인 4월 21일 ‘적군이 일본군이 아닌 조선군임을 확인하고는 동족상잔은 할 수 없다’는 면암의 지시에 따라 의병부대는 해산명령이 내려졌고 의병들은 모두 투항하고 말았다.
면암과 돈헌은 대마도에 유배되었고 면암은 그해 11월 순절하였다. 대마도에 유배중인 돈헌은 1907년 초, 황태자의 가례를 명분으로 석방되어 환국하였다.
돈헌은 1910년 8월 망국을 슬퍼하며 병환에 시달리다 1912년 고종황제로부터 독립의군부 칙령을 받았다. 1913년에 독립의군부 전라남북도 순무총장겸 사령장관으로 임명되었고, 호남지역 조직을 완료하였다. 1914년 2월에 상경해 대한독립의군부의 편제를 조직하였다.
안타깝게도 선생은 고종의 칙령을 받고 활동한 지 2년 만에 조직이 탄로되어 관련자들이 대거 체포되고 말았다. 이로 말미암아 그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한탄하여 옥중에서 3차례에 걸쳐 자살을 기도하였다. 선생은 거문도에 유배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916년 5월 23일(음력) 덕촌마을에서 운명하였다. 제자들과 주민들은 마을에 빈소를 차려놓고 노 독립운동가의 순절을 애도하였다. 그후 6월 10일 태인 본가로 유해를 운구하였고 겨울에 순창 회문산 남쪽 기슭에 안장하였다.
3년 전 옥구 ‘임씨덕온종중회(林氏沃溝德溫宗中)’는 순창 회문산에 모신 선생의 묘를 옥구읍 상평리로 이장할 계획을 갖고 종중 산에 치표를 하였다.
필자는 2019년 6월 25일(윤 5월 23일) 선생이 순절한 지 103주기를 맞이하여 돈헌 선생 성묘를 추진한 적이 있었다. 그때 주변에서 돈헌 선생의 묘를 참배한 사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전임 옥구향교 이부민 전교의 도움으로 참배를 했다는 임씨종중회장을 역임한 임홍연과 임정연 형제를 만나게 되었다. 두 형제 분은 ‘30년 전 회문산 남쪽 기슭에 있는 돈헌 선생의 묘를 참배했다’고 하였다.
두 분 모두 아흔 살이 넘는 고령이었지만 흔쾌히 회문산의 산소를 안내하겠다고 하여 다음 날 아침 우리는 군산을 출발, 순창 회문산 등정에 나설 수 있었다. 회문산 정상(839m) 아래 50m 지점에 모셔져 있었다는 30여 년 전 기억을 더듬어 등정을 시작하였다. 정상에 이르러 한참을 이리저리 오갔지만 다행히 등정한 지 3시간 만에 잡목에 둘러싸인 선생의 묘소를 찾을 수가 있었다.
선생의 묘 앞 상석 전면에 새겨진 비문이 우리를 맞았다. 해방이 되고 나서야 선생의 손자 진, 현이 묘비와 상석 등 석물을 봉안(資憲大夫獨立義軍元帥府司令總長平澤林公諱炳瓚之墓 乾坐 檀紀四千二百七十九年丙戌五月一日不肖孫 鎭 鉉 奉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우리는 어지럽게 관리된 유택을 한참 바라보다 가져간 막걸리를 영전 앞에 따르고 참배를 하니 감개무량 하였다. 선생의 묘는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오지에 모셔져 있었기 때문에 국가보훈처의 관리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오랜 풍화 작용으로 봉분이 유실되어 있었고 잡목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다. 상석은 불안정하게 돌로 괴어 있었고 망주석은 땅속 깊이 파묻혀 있었다.
그 때의 우리들의 염원은 유족들과 협의해 선생의 유해를 하루 빨리 고향땅 양지 바른 곳으로 모시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우선 개최 예정인 2019년 12월의 심포지엄을 차질없이 준비하는 일이었다. 심포지엄 주제는 ‘항일의병장 돈헌 임병찬의 병오창의와 대한독립의군부의 조명’이었다. 돈헌 선생의 선양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상경해 ‘돈헌회’ 사무국장과 만나 긴밀한 협의도 하였다.
물론 ‘임씨종중’에서도 ‘사단법인 돈헌 임병찬 의병장 추모사업회’에 앞장을 서기로 하였다. ‘임씨종중’에서 선산에 이미 마련했던 ‘치표’도 ‘돈헌 선생 묘 이장’을 전제로 조성한 것이었다.
그러나 ‘임씨종중’과 ‘돈헌회’에서는 갑자기 ‘돈헌 선생 묘 이장’ 계획을 중단하고 회문산의 ‘돈헌 선생의 묘’를 사초하기로 방침을 변경하였다.
더욱이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상평지역 ‘임씨종중’이 ‘치표’한 자리에 회문산의 묘와 동일하게 선생의 유택을 조성해 놓고 이 묘를 선생의 초혼묘라고 하여 이곳에서 추모행사를 한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임씨종중’에서 이장을 한다고 하여 지역 인사들은 선생의 유해를 고향땅으로 모셔 오기를 간절히 염원한 것이었다. 현재 임씨 종중 산에 조성한 묘는 유교 예법상 가묘일 뿐이지 초혼묘는 아니다. 초혼묘란 시신을 찾을 수 없을 때 혼백을 모시는 묘를 말한다. 선생의 묘가 회문산에 모셔져 있는데 그곳 묘지에서 한줌의 흙을 가져왔다고 해서 혼백을 모시는 초혼묘는 아닌 것이다.
초혼묘의 사례를 들자면 유관순 열사의 묘와 안중근 의사의 묘를 들 수 있다. 유관순 열사의 경우를 들어 보자. 본래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신 후 이태원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런데 이곳이 일제의 군용기지가 되면서 이장 중에 시신을 잃어 버렸다고 한다. 중간에 조성한 유관순 열사 묘(천안시 유관순 길 38)는 현재 혼백만 모셔진 초혼묘이다.
그러므로 ‘임씨종중’과 ‘돈헌회’가 회문산 선생 묘소에서 흙 한줌을 가져다 치표한 자리에 조성한 묘는 가묘일 따름이지 초혼묘는 아니다. 회문산에 돈헌 선생의 묘소가 엄연히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전통 유교예법에도 어긋날 뿐더러 유림의 종장 최익현 선생과 그의 제자였던 돈헌 선생의 명성에도 먹칠을 하는 일이다. 차라리 그 자리에 면암 최익현 선생을 주벽으로 위패를 모시고 돈헌 임병찬 의병장, 그리고 수많은 군산출신 무명 의병들의 위패를 모셔 독립운동을 선양하는 사우를 건립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