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군산에서의 화재안전정보조사를 마치며2022-01-05 15:14:24
곽도욱 군산소방서 방호구조과 소방장
소방관들은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에 한 번 전북 내에서 소방서 간 인사이동을 한다. 필자는 익산 출신으로 완주군에서 5년간 소방교 계급으로 근무하다 진급해 2020년도 7월 군산소방서 화재안전정보조사반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화재안전정보조사반은 화재안전정보 조사를 주된 업무로 하는 부서인데, 주택을 제외한 거의 모든 건축물에 대한 소방시설 상태와 화재위험성을 2인 1조로 조사한다. 그렇기에 많이 돌아다니게 된다.
이 글은 소방서 정책 홍보에 대한 글처럼 보이나 사실은 아니다. 필자가 1년 6개월 동안 거의 매일 군산 곳곳을 휘젓고 다니면서 보고, 만나고, 느꼈던 풍경과 사람들에 대한 소회를 글로 풀어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크다. 혹여 이 글이 신문에 실릴 때쯤 어쩌면 익산에서 근무하고 있을지 모른다. 연고지인 익산으로 근무지 신청을 해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 풍경이야기 - 군산은 아름다웠다.
익산사람이 군산의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웃길 수도 있지만 나에게 군산은 거의 와본 적 없는 가깝고도 먼 도시였다.
옥산평야의 푸른 벼가 익어 누렇게 되고, 콤바인에 베어나가고, 흰 눈으로 뒤덮이고, 얼어붙은 논바닥에 수많은 오리떼는 부지런히 무언가 찾고 있다. 그 모습을 사무실 창문으로 거의 매일 볼 수 있다니, 비유하자면 군산소방서는 UHD 고화질 대형 TV로 내셔널 지오그라피 영상을 항상 틀어놓고 있는 것이다.
군산 사람들은 알까? 비응항에 작은 해수욕장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옥구읍 상평리의 기가 막힌 느티나무 그늘을, 그리고 동백대교와 금강하굿둑 사이 민물과 썰물을 보며 차를 마실 수 있는 커피숍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 경제이야기 - 군산은 위험하다.
오식도동과 소룡동에 있는 공장들을 수없이 방문했다. 제대로 돌아가는 공장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 거대한 공장 건물을 매매·임대한다는 현수막만이 나부낀다. 구도심에 있는 소매점들도 한집 건너 한집은 문을 닫았다. 전통시장이 현대화 사업으로 깔끔해지기는 했으나 물건을 사려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화재안전정보 조사를 하려면 관계인을 만나 질문을 해야 하는데 가게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군산 특유의 정겨운 정취라고 생각했던 바뀌지 않은 구도심의 오래된 간판들이 군산 경제의 오랜 침체를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음식이야기 - 군산은 맛있다.
익산도 음식 맛이라면 빠지지 않는다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군산에 와서 놀란 것은 웬만한 식당이 내 기준에 다 맛집이라는 것이다. 다시 군산에 오면 꼭 다시 들르리라 생각하고 핸드폰에 상호명을 적기 시작한 것이 어림잡아 스무 곳 정도 된다. 소바가 맛있는 곳, 오리구이, 회, 생선구이, 백반집, 물메기탕, 콩국수 등등 나열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이해하게 되었다. 왜 음식 맛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는지 말이다. 평야와 강,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있는 지형적인 특성, 풍부한 식재료에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 내 나름대로의 결론이다.
● 사람이야기 - 군산은 정겹다.
한 지역 사람의 특성을 단정 짓 듯 얘기하는 것은 어렵고 조심해야한다. 유의미하고 명백한 특징을 찾기도 힘들뿐더러 “군산 사람은 이렇다, 저렇다”라는 정확하지도 않은 명제가 사실인 것 마냥 쉽게 회자될 위험도 있다.
필자가 군산에 오기 전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군산은 해안가라서 사람들이 좀 억세다”는 것이다. 필자가 경험적으로 확인한 사실은 첫 말이 고우면 고운 말이 나오고, 첫 말이 공격적이면 공격적인 반응이 나온다는 것이다.
군산을 만끽하고 싶어 채만식의 「탁류」라는 소설을 읽었다. 소설 속 정주사가 멱살 잡혔던 미두시장이 이쯤 되겠구나… 초봉이 살았던 콩나물고개는 이쯤인가? 이런저런 생각하며 화재안전정보 조사를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책 속에는 군산 특유의 사투리가 잘 나와 있는데 군산소방서 직원들 중에는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해망동 어느 오래된 조선소를 방문했던 날, 주인은 없고 고깃배를 고치러 온 뱃사람이 우리를 맞아주었는데 그 분 말투가 딱 소설 속 군산 사투리였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군산소방서에서 화재안전정보조사 나왔습니다.” “소방소에서 오셨소?” “안으로 들어오소” “차 한잔 하것소?”
이크, 글로는 흉내도 못 내겠다.
● 글 마무리
필자가 객(客)으로는 군산에 몇 번 들르겠지만 조사업무를 했던 지금처럼 군산 곳곳을 세심하게 들여다볼 기회가 또 올까? 새만금방조제 따라 부안 넘어가듯 군산을 그렇게 둘러보면 안 된다. 군산의 참맛을 느낄 수 없다. 군산은 음미해야한다. 최소 며칠간은 상주해야한다.
나는 지금 떠나지만, 나이 먹어 다시 왔을 때 정겨웠던 지금 모습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는 영화동 어느 오래된 다방에서 쌍화차 한잔 먹으리라.
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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