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교수가 썼다는데 널리 회자되고 있는 글이다. 읽을수록 구구절절 옳고 그 추구하는 뜻도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이 글을 곰곰이 되씹어보면 노인을 아예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비논리적, 비상식적, 비윤리적, 비인간적인 발상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했다는 것이다.

눈만 뜨면 정치, 사회, 문화 등 제 영역에서 일어나는 편가르기에 신물 나는 세상에 노인마저 양극화해 비아냥거리는 것 같아 맘이 편치 않다. 물론 반론도 있을 수 있다. 무지한 노인에게 비전을 제시해 남은 인생 더 값지게 살라는 좋은 뜻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좀 더 품위 있고, 의젓하고 지혜롭게 살자는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거지가 불쌍하다고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주면 베풀었으니까 어르신이고, 형편상 그냥 지나가면 노인이라 비아냥거려야 마땅할까. 몸이 아파 바깥출입 맘대로 못해 누워있으면 그는 죽을 때까지 노인이고, 정녕 어르신이 될 수 없다는 말인가.

하루 삼천 원 버느라 새벽부터 폐지 줍는 노인에게 언제나 배우고, 존경을 받고, 아량을 베풀고, 덕담을 나누고, 행동을 절제하고, 보다 겸손한 어르신이 되라는 말은 사치에 불과하다.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했다. 위 글처럼 “노인은 늙은 사람이고 어르신은 존경받는 사람입니다.”라고 아예 사실로 단정해 버리니 노인은 숨 쉬는 것조차 버겁게 들린다.

일본의 소설가 소노 아야코(曾野 綾子)는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에서 “이 세상에 일단 태어난 사람은 예외 없이 누구나 다 가난하든 부자이든 지위가 높든 낮든 나이를 먹으면서 노인으로 변해 갑니다. 어쩔 수 없이 노인으로 늙어가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늙더라도 반듯하고 곱게 늙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 얼마나 부드럽고 뜻 깊고 설득력 있는 말인가.

그래도 끝까지 노인을 무시하고 어르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리라면 하루속히 공공기관 이름을 고쳐야 한다. ‘노인종합복지회관’을 ‘어르신종합복지회관’으로, 노인의 날·노인 문제·노인 일자리·노인 건강·노인정·노인 대학에서 ‘노인’을 모두 ‘어르신’으로 바꿔야 한다.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를 ‘어르신과 바다’로 바꾼다면 독자들이 손뼉을 칠까 항의를 할까.

노인은 인간의 마지막 과정이다. 노인이란 ‘나이가 많이 들어 늙은 사람’을 의미하며 어르신은 노인의 존칭어일 뿐이다. 어르신의 어원상 의미는 ‘남의 아버지를 높여서 이르는 말’이나 ‘노인을 공경의 대상’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나이 많은 노인이 나이 적은 노인에게 자기보다 똑똑하고 많이 배웠다고 어르신이라 해서야 되겠는가. 노인의 품격을 함부로 깎아내리는 우를 범한 사람은 노인일까 어르신일까.

※본 내용은 본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