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의식하지 않고 소신껏 행동한다는 것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그것이 ‘십인십색’ 사람들의 인생관이나 가치관, 심성이나 취향, 나아가서는 인격까지 드러내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사는 아파트 내엔 정자가 둘 있다. 코너를 살짝 돌면 아주 가까운 곳에 널찍한 정자가 있는데, 정자에 앉아 계절이 오고가는 것을 보는 것은 물론 애연가들의 흡연터가 되기도 하고 노동자들의 쉼터가 되기도 한다. 이 정자 주변에는 꽃밭이 조성되어 있어 나를 자주 불러내곤 한다.
며칠 전 이 꽃밭의 작약이 때 이른 꽃봉오리를 줄기마다 매달고 있어 정자에 앉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어느 젊은 여성이 마스크를 쓴 채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듯 꽃밭 주변으로 다가오더니, 걸음을 멈췄다가 서성거렸다를 반복했다. 에어팟(AirPods)을 끼고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이려니 생각하고 자세히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그때 정확한 그녀 음성이 들렸다. “어서 나와. 밥 먹어야지.” 그녀는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캣맘’이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저쪽에 쭈그리고 앉은 그녀의 머리가 보였다.
나는 작약 구경을 멈추고 길을 따라 그녀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꽃밭 길모퉁이에 길고양이는 행복한 듯 누워 있었고, 길고양이를 애타게 부르던 그녀는 누운 길고양이의 배를 긁개 모양의 빗으로 털을 빗겨주고 있었다. 아마도 길고양이가 철쭉나무 밑에서 쉽게 나오지 못한 것은 낯선 나를 경계했음이 아니었을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뉴스를 안 본 지 오래되었다. 물론 뉴스뿐만이 아니라 드라마나 오락프로 등도 흘깃 보는 게 예삿일이다. 약간의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 작년 정치 상황과 코로나19 상황 때문이었다.
그러나 눈만 뜨면 시끄러운 정치 이야기와 공포스럽기까지 한 코로나19 이야기는 나를 포함한 우리 국민, 삶의 질을 형편없이 망가뜨렸다. 결국 예전부터 지녀온 습관은 여전히 나의 눈을 편하게 길들여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캣맘을 만났던 그날, 집으로 돌아와 휴대폰을 여니까, 고려대에 400억 원대 기부를 한 양영애 · 김영석 부부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이 부부는 초등학교조차 나오지 못했으며, 무일푼으로 노점 과일장사를 시작했고, 전차요금이 아까워 걸어 다녔으며,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식당일까지 했다는 기사였다. 특히 양영애 어르신은 유방암 환자로 수술과 항암 치료를 했고, 뇌경색 진단까지 받았다는데, 자제분들에게 물려줄 생각은 안 하셨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애들에게 줄 수도 있지만, 내가 이곳에서 힘들게 먹지도 않고 입지도 않고 모은 돈인데 자식들이 잘 지킨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자기들 사고 싶은 거 사고, 먹고 싶은 거 사 먹으면서 흐지부지 사라지면 슬프잖아요.”라고 하셨다.
사람 사는 일, 결코 녹록하지 않다. 특히 정치권이나 펜데믹 상황을 보면 다수의 공동 이익보다는 사리사욕에 혈안이 되어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고통이든 기쁨이든 개인이 아닌, 우리가 ‘함께’ 나누고 ‘함께’ 행복해야만, 진정한 사람살이라는 소신所信 하나쯤 품고 살아야 할 때가 아닐까. 캣맘이나 어르신들의 묵묵한 가르침이 존경스럽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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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