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시론] 첫눈 내리는 날의 단상2021-01-04 09:23:19
손미자 시인
내가 나를 위하여 선물하는 방법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한 가지가 나에게 꽃을 선물하는 일이다,
첫눈 오는 날! 화원에 들렀다. 화원에 들어서는 순간, 어여쁜 꽃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어 내 마음은 잠시 황홀함으로 들떠 있었다. 그러다 한쪽으로 시선이 꽂혔다. 즐비하게 늘어선 난화분 때문이다. 꿋꿋하게 서 있는 모습에서 나는 언짢은 마음이 드는 이유는 어찌할 수 없었다.
<나도 꽃처럼>의 송광성 작가는 난은 꽃을 피우기까지 몇 년이 걸려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밝은 조명 아래에서 활짝 핀 난꽃을 보니 너무 쉽게 꽃망울을 터트린 것 같아 어떤 신비감이나 신선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어느 날 평소에 알고 지내던 지인의 집에 점심 초대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집에서 머무른 몇 시간 동안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었다. 현관에 들어서니 베란다에는 난 화분들이 질서 정연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그 난들은 그 집 남자의 별난 사랑으로 애지중지 키운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난을 위한 금지된 행동지침들이 있었는데,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안 되고, 흡연은 말할 것도 없음은 물론, 실내온도는 몇 도를 유지되어야 하는 등등 난을 위한 금지사항들을 가족들은 철저히 지키고 있단다.
이쯤 되면 이건 사람을 위한 난 키우기인지 난을 위한 난 키우기인지 착각이 들었다. 물론 난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라는 그들 나름의 법칙을 이해하면서도 말이다.
최근에 난에 대한 글을 읽었다. 이태준 작가의 <무서록無序錄>과 송광선 작가의 <나도 꽃처럼>에서 접한 난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들의 글을 읽다보니 난은 왠지 까탈스러운 어린아이 같은가 하면 극히 귀족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침저녁으로 보듬어주고 닦아주며 지극히 애정을 쏟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난은 우아한 운치를 중히 여기고 기품 있는 인내심을 가르치는 선비 문화의 꽃이라 했다.
기품 있고 멋스러운 꽃이 난만 있을까만 오히려 귀족풍을 풍기는 난보다 치자향이 가득한 치자꽃에 정이 간다. 난꽃 옆으로 사람이 가면 난향은 저 멀리 도망치지만, 치자는 사람이 가까이 가도 절대 향이 달아나지 않는다. 치자향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벌려 나를 향기로 감싸주는 듯하다.
또 있다. 싸리나무 울타리에 덩굴진 하늘빛 닮은 나팔꽃도 더욱 사랑스럽다. 나팔꽃은 사랑을 주지 않는다고 투정부리지 않을뿐더러 기꺼이 소박한 웃음으로 반긴다.
그때였다. 이런저런 쓰잘데기 없는 망상 속에 빠져있는데, 화원 구석에서 금어초가 나를 향해 손짓한다. 금어초 한 다발을 품에 안았다. 금어초처럼 뭉실뭉실 함박눈이라도 내리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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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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