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미자 시인,, 군산대 평생교육원 슬로리딩 큐레이터 강사
‘송풍동, 송풍동에 오래된 바람이 분다’는 전북문화관광재단에서 지원하는 문화콘텐츠프로그램 제목으로 송풍동 주민과 공유했던 사업이다.
멀리서부터 우리 프로그램 제목의 현수막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11월의 하늘이 무척 푸르러 코끝으로 시린 바람을 느끼며 송풍동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운 듯 무겁다. 매주 화요일은 그들을 만나는 날이었는데, 그 여정이 오늘 마무리 되는 날이다.
그들과 만남이 삶의 여정과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얼굴이 시로 꾸여진 이야기가 길거리 시화로 걸리게 된 것이다. 그동안 서로에게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으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행복을 선물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프리카 격언에 ‘노인 한 명이 사라지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어르신들은 지혜가 축적된 책과 같으며, 이러한 책들을 모아놓은 도서관과 같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도서관에 쌓인 책들이 군산 월명산자락의 구석진 마을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 지역이 송풍동 마을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서 있는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문해공부방에서 한글을 배우거나 화투놀이로 소일거리를 영위하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전북문화관광재단에서 지원하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문화예술교육의 기회를 그들이 받게 되어 송풍동과 인연이 되었다.
이 동네 어르신들은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의 대장정에서 성실히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은 학교 문 앞에 가보지 못한 채, 무학의 설움을 가슴에 삭이면서 오로지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내기 위하여 살림살이 어려운 가정을 지켜왔다.
배움의 갈증으로 ‘문해교실’에서 뒤늦게 한글을 깨우치고 있다. 치열하게 살아왔던 탓에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르신들에게 학습기회를 제공, 자신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고 자기 삶의 주체로 남은 여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한글공부다.
이들은 한결 같이 관절염이나 잔병치례를 안고 살아가고 있어, ‘이젠 죽어야지’라는 푸념을 입에 달고 산다. 일생을 잘 살아온 어르신에게 ‘정체성’이라는 생경한 단어를 사용하기 싫다. 다만 일생을 그저 열심히 살아온 그들에게 ‘나’라는 존재를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지난한 삶이 아름다웠고 가치 있는 여정이었음을 스스로 느끼기를 바랄뿐이다.
화요일마다 우리는 만났다. 또래 노인들이 쓴 시를 낭독하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한 그림책으로 스토리텔링하며 자신의 삶과 적용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서로가 웃고 울면서 마음도 열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어르신과 관계 형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농담도 주고받는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너’와 ‘나’에게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일, 나의 기쁨과 슬픔을 기꺼이 나누며 진심으로 교감하는 시간이 쌓여갔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작은 의미의 인문 문화 공동체를 이루어 나갔다. 서로 다른 색깔을 존중하며 인문문화예술을 향유하면서 진정한 행복의 무늬를 찾아갔다.
자기들이 구술언어로 쓴 시화 앞에서 소녀처럼 부끄럽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시를 자랑스럽게 바라본다. 자신의 이야기가 베인 시를 더듬더듬 낭독하며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다. 아쉬운 웃음과 소리들이 송풍동 골목을 서성인다.
송풍동에 오래된 바람이 계속 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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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