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개
전재복------군산 여루 문학회 회원
마법의 피리를 불며
숨죽인 관능이 일어선다
긴 혀를 날름이며
간들어진 춤을 춘다
하늘거리는 치맛자락에
빌딩 숲이 비틀거리다
흐늘흐늘 무너진다
긴 밤을 견뎌 온 강물마저
더운 숨을 할딱이며
소리없이 자지러진다
빛과 어둠의 중간 쯤
적당히 뭉개지고
적당히 말랑거리는 세상을
놀라운 식욕으로 먹어치우고는
느닷없이 뱉어내는 거식증
불상한 것!
넘쳐서 가실 수 없는
난치병을
너도 알고 있구나.
시 감상---------배 환 봉
요증이 마침 안개의 계절이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리노라면 갑자기 시야를 가리는 때도 있고 아예 온 종일 뒤덮는 날도 있다.그 강열한 태양을 꼼짝 못하게 덮는 안개. 마치 천지 창조 이전에 조물주가 지구를 놓고 하늘과 땅을 나누기 직전 천지에 무엇을 만들 것인가 하고 잠시 생각하는 순간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 시에서 안개의 속성을 잘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긴 혀를 날름이며 /간들어진 춤을 춘다/ 안개는 그 속에 서 있으면 슬슬 미동하는 걸 볼 수 잇다. 마치 혀를 날름이는 것 같은. 그 혀로 적당히 말랑 거리는 세상을 먹어치우고는 포화 상태가 되면 뱉어버린다 했다. 어쩌면 정의도 불의도 아닌 속된 세상을 다 먹어치우고 깨끗한 세상을 마법처럼 만들어 냈으면, 하는 지은 이의 바람인 듯한 느낌이 든다. 시는 지은 이의 '이상향' 이라는 말이 떠 오른다.
